함안 대사마을과 낙화의 유래

Autore
이근영
Editore
부크크(bookk)
Pubblicazione
20221019
ISBN
9791137298569
Area di registrazione ISBN
Corea del Sud (ISBN 979-11)

Descrizione

함안 대사마을은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마을 이름입니다. 그래서 한절골, 한짓골이라고도 하고, 옛날에는 서원골이라 불렸습니다. 이곳에는 보물 71호인 함안 대산리 석불(石佛)이 있습니다. 이 석불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화강암제(花崗巖製)의 좌불(坐佛) 1구와 좌우보처 보살 각 1구가 있습니다. 조선 중기부터 괼목(괴항)에서 이곳으로 온 함안조씨(咸安趙氏)와 동지산(冬只山)에서 내려온 성산이씨(星山李氏)가 주요 성씨입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이 많이 살았고, 동헌의 관리들도 이곳에 살았다고 전합니다. 마을회관 앞쪽에 선비들이 하짓대를 꽂았던 곳을 화지떼기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선비들이 많이 오고 간 마을로 짐작됩니다. 조선 초기(1400년) 숭유억불의 국가시책으로 유생(儒生)들에 의해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을 모아 돌로 담장을 쌓는 등 수백 년간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해왔습니다.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이 석불에서 매년 사월 초파일에 연등과 낙화를 달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래 사찰의 낙화는 소재구복(消災求福)의 의식(儀式)이었습니다. 이것이 민간으로 흘러나가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를 담은 정월 대보름 액막이 의례로 바뀌게 됩니다. 조선 후기에 다시 한번 성격이 바뀌어 불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즐기는 유희(遊戱)적 성격의 낙화놀이(落火戱)로 정착하게 됩니다. 낙화놀이가 사찰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조선 후기 다양한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해동죽지(海東竹枝)로, 사월 초파일 민속놀이로 낙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