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raian
일상이 되었으나 흔히 그 심각성을 간과하는 ‘폭력’의 본질을 규명하고, 폭력 사용의 한계를 탐색하며, 폭력의 가해자에 대한 희생자의 용서와 화해 가능성을 살피며, 폭력에 맞서 때로 행동으로 저항했던 사르트르부터 데리다까지 열두 명 현대 철학자의 사상과 논쟁과 투쟁을 프랑스의 두 젊은 철학자가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제 식민지기와 군사독재기 폭력으로 얼룩졌던 슬픈 역사에서 위안부, 사상범, 공권력에 희생된 시민 등 폭력이 남긴 상처가 아물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폭력 앞에 선 철학과 철학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통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얼마 전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허락 없이 임의로 가해자 일본과 ‘돈을 받고 해결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래 대목은 새겨볼 만하다. “요컨대, 누가 희생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공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정치가가 희생자들에게서 용서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끔찍한 범죄의 흔적이 ‘기억에 암’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권위에 준거해 용서에 동의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이 서려 있는 묘비명처럼 간결한 장켈레비치의 이 문장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용서는 사람들이 죽어간 집단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



